2/26 시편84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3 thoughts on “2/26 시편84”

  1. (행하심)

    주의 집 (장막, 궁정, 제단,,)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v4) →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In text)

    주님…주의 집(장막, 궁정, 제단)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그냥 건물을 의미하는건 아니고…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모든 곳을 말하는 건가요? 또 주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무엇일까요? 세상에서 말하는 복은 아닌거 같은데요…..

    “수은아~~ 나를 매일 만나는 것이란다”

    주님~ 주의 집이 특정한 어느 곳을 말씀하시는게 아니라 기도하면서 주님과 만나는 곳이 주의 집이군요.. 또한 이렇게 매일 주님과의 만남의 교제가  주님이 말씀하시는 복이 군요…..

    (To me)

    주님 저도 주님의 복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 기준에 발을 담그고 있고 그것을 좋아 합니다. 말은 아니라고 하면서 나보다  세상적으로 잘나가는 지체를 보면 부럽고.. 착한데 힘들게 사는 지체를 보면 답답하고 세상적 기준의 답들을 제시하는 나를 보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보다는….그러나 이제는 매일 주님의 임재안에 들어가고 싶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복도 받고 싶고 궁금함니다… 

    주님~~

  2. (행하심)

    주의 집에서 주를 찬송하는 것을 사랑스럽고 복되다고 고백하게 하시는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v1,4)

    in Text: 특별히 주의 집(주의 장막, 궁정, 제단, 시온) 에서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합니다.

    내가 편하게 드리는 삶의 예배가 아니라 주의 집이라고 말씀하시는 특별히 구별된 예배가 있는 것인지요?

    정혜야..                    란다.,,(잘 모르겠습니다)

    To me: 하나님..예배를 사모하고 좋아서 예배를 찾아 드리면 은혜 주셔서 그렇게 인도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사랑스러운 복된 예배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ㅠㅠ

  3. 영혼이 쇠약해질 정도로 하나님의 궁정을 사모하게 하시는 하나님 (v2) —> (영혼에 깊은 만족을 주시는) 완전하신 하나님

    in Text: 왜 시편 기자는 영혼이 쇠약하도록 하나님의 궁정을 사모했을까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주안에서 영혼의 해갈을 경험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예배하는 것에 그의 영혼은 깊은 만족을 누리며 주님을 참되게 사랑했을 것 같아요.. 라헬을 사랑하여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긴 야곱처럼 시편 기자에게 예배의 순간은, 하나님을 마음 깊이 사랑함으로, 늘 잠시 잠깐 같아 또 기다려지고 또 기다려져 영혼이 쇠약해질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딸아.. (예배자의 마음)..이란다.

    to Me: 제게도 시편 기자와 같은 하나님의 궁정을 사모하여 영혼이 쇠약한 ‘예배자의 마음’이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못했다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보다 육신의 걱정과 염려가 우선이 되었던 것, 삶가운데 예배자의 마음보다는 마음 속 우상들을 부여잡고 살았던 죄악을 회개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 되시는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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