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번째 기도모임
3월 7일 2011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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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자긍심이 넘치는 역사를 지닌 나라,
피라미드와 파라오가 대표적인 상징물인 이집트는 대부분의 세계에서 중동의
중심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집트가 더 이상
그 지역에서 경제적인 리더의 위치에 있지 못하지만 인근 국가들의 문화, 종교, 정치적 관점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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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는 타히르 광장(해방광장)에서의 두 주가 넘는 시위로 전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는 국민들이 원하던 바대로,
지난 2월 11일 예상보다는 적은 투쟁으로 30년 권력에서 무바라크가 물러났다. 승리감이 전국에서 넘쳐 나오고 더 많은 아랍 국가들이 다시 한 번 용기를 얻어 대담하게 거리로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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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바라크 퇴진이후 축하기간 동안에 콥트 교회와 복음주의적 기독교인들이
광장에서 드러내고 미사와 예배를 드렸다. 이런 자유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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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행히도 기독교 공동체가 여전히 혁명을 환영하는 사람들과 두려워하는
사람들로 양분되어있다.이는 이집트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에 흥분하고 있는 이슬람 단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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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형제단과 그 정당이 자신들을 혁명의 지도자로 내세우고 있으며
기타 근본주의 집단도 정당 진입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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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를 일으켰던 많은 문제는 나라 전체가 겪고 있는 끝없는 가난에
기인한다. 정부의 최고 단계에서부터
진정한 개혁이 일어나도록 이제 문이 열렸다는 것은 많은 이집트인에게 한층 나은 미래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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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YWAM. AWPG Prayer Packet)
리비아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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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는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비잔틴 시대를 거쳐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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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부족과 씨족을 근간으로 하는 인민들이 전체적으로
1969년에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카다피를 수장으로 하는 족장체제 아래
효율적으로 통제되었다. 그의 정권하에서
소수 민족과 종족은 지속적인 차별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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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리비아 정권은 시위대를 향한 무력진압과 공격을 공표하며 시위에
가장 강경한 태도를 취해왔다. 이곳의 상황은 시위를 겪은 어떤 나라보다 최악의 상태이다.
이곳의 정부는 무려
40년이 넘게 자리를 틀고 앉아 떠날 생각조차 않는 듯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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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그 지도자가 마술을 믿고 주술을 행해왔다.
카다피는 목에 자신을 천하무적으로 만들어줄 부적을 붙이고 다니는데
수백번의 암살 시도에도 살아남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믿는다. 나라 전체가 각 시민들에게 피를 보게 할 것을 요구하는 피의 언약을 맺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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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대다수가 역사적으로 서로 끊임없이 싸워온 종족별 당파로 분열되어있다.
이 종족들은 지속적으로 서로를 증오하며 상대 종족이 분열을 지속하는
원인이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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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장남의 이름,
세이프 알이슬람은 “이슬람의 칼”이란 뜻이며 국가의 핵심 지도자이다.
현재 자신의 부친을 지지하는 듯하며 최근 국영방송에서 한 연설은 시위대의
화를 더욱 돋구는 결과를 낳았다. (출처:YWAM Prayer Packet)
바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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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에서는 이날 시아파가 주축을 이룬 시위대와 친
정부 성향의 수니파 무슬림 간에 충돌이 빚어져 여러 명이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 간 충돌은 경찰이 최루가스를 쏘며 양 진영을 분리한 끝에 마무리됐지만 반 정부 시위대는 국영방송국
앞으로 자리를 옮겨 반 정부 시위를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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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파 시위대는 바레인의 전체 인구
75만명의 70%가 시아파임에도 수니파인 알–칼리파 가문이 200년 가까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며 알–칼리파 가문의 권력독점 구도 혁파와 시아파 차별정책 폐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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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시아파는 수니파에 비해 훨씬 분리주의적 강경
모슬렘으로 알려져 있어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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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권의 휴일인 금요일을 맞아 4일 중동 각국에서 반 정부 시위가 열린 가운데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로 사상자가 속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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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북부 암란에서는 시위대에 대한 군의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수천명에 이르는 시위대는 33년째 장기집권 중인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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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사나에서도
10만명 가량의 시위대가 이슬람사원에서 금요기도회를 마친 뒤 사나대학에
모여 반 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에는 처음으로 여성들도 참여했다.
살레는 야권과 시민들의 퇴진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