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S 뉴욕 중보자 초청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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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S 뉴욕에서는 11월 첫주 월요일에 중보자 초청의 밤을 개최합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하신 중보자 한분이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셨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요 20:23) 

그렇다면 우리에게 죄사함의 권세가 있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죄사함은 오직 어린양의 피로만 가능합니다 

그 권세를 가지신 이는 우리의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이렇게 우리가 마치 죄사함의 권세를 가진 것 처럼 

죄를 사할 수 있다고 하셨나요? 이것에 대해서 일부 성경 학자들은

우리의 인간적 용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 쓰인 사한다 라는 말의 원뜻은 용서라는 뜻과 더불어 

그것을 떠난다 혹은 탕감한다 라는 뜻이 있슴을 보아야 합니다. 

즉 우리가 누구 나한테 못된 짓 한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너를 용서해” 라고 하면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죄 (죄의 의미는 하나님으로 부터 

떠난 것입니다) 를 우리가 탕감해 주겠다고 하면 예수님이 그 죄를 

탕감해 주시고 그냥 두면 예수님도 그냥 두시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의 탕감이라는 결국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의 맞바꿈이고 

그것은 구속의 피로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죄사함의 은혜를 베풀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의 기도로 부터 시작됩니다.

그것이 중보입니다. 

중보는 Inter 떨어져 있는 사이를 cessory (go) 가다 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이 이땅에서 하신 사역을 이제 주의 제자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의 중보자가 되셔서 하늘에서 당신의 제자들을 위해서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중보자들이 더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일부 교회에서는 중보기도 중보자라는 말을 쓰는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호도합니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왜곡한 것이고 어쩌면 마귀의 역 속임수에

철저히 당하고 있는 우매한 결과일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은 울 상황에서도 도무지 울지 않고

분별해야 할 상황에서 무지한 이 세대를 향해 

“애곡하는 부녀,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오라”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패역한 세대는 점점 더 긴박해져 갈 수로고 

두가지의 양면성을 보입니다 


평화다 평화다 절대 아무일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얘기하는 소리와 

지금이 그때다 저것이 징조다 라고 혹세무민하는 소리입니다   


둘다 주님앞에서 절대로 죄없다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서 기도할 자를 주님은 찾고 계십니다 


UPS는 중보자로 마음을 주신 여러분들을 주의 이름으로 초대합니다 


일시: 2014년 11월 3일 월요일 저녁 7:30분 

장소: 리디머 교회 선교관 

        150 West 83rd Ave (Amsterdam – Columbus), New York 

         https://goo.gl/maps/e7qN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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